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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해뜰날' 가사 악보 송대관

by 세상이왜이래 2025.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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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날' 가사 악보 작사:송대관 작곡: 신대성

 

작사:송대관 작곡: 신대성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송대관을 단숨에 인기 가수로 만든 매우 유명한 히트곡이자, 트로트를 대표하는 히트곡 중 하나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록 장르였습니다.

 

작곡은 데뷔 초기부터 송대관과 함께 작업한 작곡가 신대성이 했으나, 작사는 송대관 본인이 했습니다.

 

일반 대중들이 잘 모르는 부분은 해뜰날 첫 가사에 "쨍하고 해뜰날" 하는 부분의 여성 코러스를 부른 사람이 아모르 파티로 유명한 김연자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송대관과 신대성은 여성 합창단의 녹음을 원했으나, 비용이 부족해서 한 명만 하기로 했고 당시 비교적 출연료가 적은 김연자 한 명을 섭외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1967년에 데뷔했지만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시기를 보낸 송대관은 이 곡을 통해 최고의 대중가수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실제 1976년 1월 23일 경향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그 당시 송대관은 3, 4년 전에 지나간 가수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동아일보 1972년 9월 21일 기사에는 TBC 가요대상 신인 부문 후보였다고 나왔습니다.

 

무명으로 살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송대관은 어느 날 자신의 힘들었던 청년 시절을 혼자 되돌아보다가 갑자기 큰 느낌을 받아, 아무 종이에 열심히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다 쓰고 나서 다시 한번 본 뒤 느낌을 받은 송대관은 역시 자신처럼 가난한 무명 작곡가 신대성이 살던 종로 뒷골목 작은 방으로 달려가 그 종이를 주고 "신선생, 나도 좀 떠야겄어! 도와주쇼!"라 외쳤고, 가사를 보고 갑자기 머리가 밝아지면서 이건 될 것 같다고 느낀 신대성이 느낌을 살려 작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래 송대관이 쓴 가사는 실제보다 훨씬 거칠어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수정을 했다고 합니다.

 

음반 녹음을 하면서는 큰 반응이 올 것이라는 느낌까지는 받지 못했으나, 실제로 1975년 말 발매가 시작되자 당시 석유 파동으로 지친 시대 분위기로 인해 대중들이 크게 호응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고, 몇 달 안 되어 1976년 초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했습니다.

 

당시 1위 곡을 부르려고 무대에 올라간 송대관은 전주가 끝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계속 흘렸고, 다음날 신문들의 연예면은 "송대관의 해뜰날이 국민들을 울렸다"는 내용으로 가득 찼습니다. 결국 그는 그해 말 가수왕이 되어 최고의 트로트 가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대마초 사건으로 다른 가수들이 활동 정지를 당한 영향을 받은 면도 있다고 위 기사에서는 분석하지만, 노래가 좋지 않았다면 그런 영향을 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노랫말과 곡조가 모두 희망적이면서도 마음이 아픈, 경제성장기 한국만의 감정을 잘 표현하여 시대를 넘어 50년 가까이 사랑받는 좋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 희망하면서 경제 발전에 힘쓰던 당시 시대 분위기를 대표하는 음악이기에 당시에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야기되는 음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동영상 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노래에 감정이입돼 눈물이 났다느니 펑펑 울었다느니 하는 등의 댓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발매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고는 "그래 노래는 이렇게 신이 나야지!"하며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또 실제로 그 시절 군부대에서는 마치 군가처럼 하루 종일 '해뜰날'만 부르도록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군 간부 회식에서 부르면 안 되는 노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왜 불러도 저런 뉘앙스의 노래를 부르냐? 군생활 힘드냐?"는 괴씸죄가 된다고 합니다.

 

해뜰날 - 송대관 / (1975) (가사)

 

가요무대 - 해뜰날 - 송대관.20190107

 

진욱 - '해뜰날' 미스쓰리랑 10회TV CHOSUN 240704 방송

 

손태진 -해뜰날&다함께 차차차&찰랑찰랑 불타는 장미단 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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