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 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1975년은 힘든 한 해였습니다. 오일쇼크가 최고조에 달해 생활이 어려웠고, 긴급조치 7호가 내려졌습니다. 그해 7월 오아시스 레코드사는 '중고 신인' 송대관의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이듬해 말까지 음반은 2만장밖에 판매되지 않았지만, '해뜰날'은 온 국민이 부르는 대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쨍 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하는 김연자의 코러스로 시작하는 노래는 산업 개발 시대의 노동요이자 희망가였습니다.
1.독립운동가 할아버지와 노래로 쌀가마니 송대관
50년 전, '쨍' 하는 노래를 들려준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송대관씨 가족은 "6일 컨디션이 갑자기 악화돼 7일 새벽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새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송대관은 몇 해 전 담도암을 이겨냈지만 이후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1946년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가난한 집안의 노래 잘하는 아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송영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때 전북 옥구군 서수리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감옥에 갔다 나온 뒤 44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송대관의 아버지는 6·25 때 행방불명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이" 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노래 경연대회에 나가 쌀 한 가마니, 돼지 한 마리를 상으로 받아왔습니다. "집안 살림에 겁나게 보탬이 됐지. 남들은 입시 공부할 때 나는 팝송 가사 외우며 가수가 될 꿈을 키우는 게 당연했지."
1965년 전주 영생고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KBS '가수탄생'에서 연속 3회나 우승했습니다. 오아시스 레코드사와 50만원에 계약한 후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습니다.
바느질로 가족을 부양하다 병을 앓던 어머니 국갑술씨를 생각하며 가사를 쓴 1971년 곡 '세월이 약이겠지요'(당신의 슬픔을/ 괴롭다 하지 말고/ 서럽다 울지를 마오)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2016년, 2월 7일 돌아가셨습니다. 그 아들 송대관도 같은 날, 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2.”쨍하고 해뜰날” 가사 답십리 문간방에서 쓰다
1975년 답십리 굴다리 옆 단독주택 문간방에서 송대관은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며 가사를 썼습니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지나간다/ 떠도는 놈이라 괄시 말아라/ 쨍 하고 해뜰날 있을 거니까' 송대관은 "쓰고 나서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글이 너무 잘 나와 새벽 4시에 미친놈처럼 웃었다"고 했었습니다. "신 선생, 나도 한번 떠야것소. 밀어주셔잉." 작곡가 신대성이 곡을 붙이고, 원래 가사를 고쳐 '해뜰날'이 나왔습니다.
노래 한 곡으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대마초 사건으로 유명 가수들이 체포된 공백기의 가요계, 송대관이라는 '블랙홀'로 모든 빛이 모여들었습니다. 1976년 그는 방송사 '가수왕'이 되었고, 같은 제목의 영화까지 제작되었습니다. 77년에는 네 살 연하 무용가 이정심씨와 결혼했습니다.
'컬러 방송'은 그의 인생에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이 극장식 쇼에 와서 가수 얼굴을 봤는데, 컬러 방송이 나오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직장이 없어진 거다." 미국 이민자인 처가에서 초청장을 보내줘 워싱턴으로 이주한 것이 1980년입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 또한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정신으로 이겨내어 가게를 10개나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찾아온 등의 통증. 원인을 찾지 못하자 의사가 말했습니다. "향수병 같다." 송대관은 "속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한 울부짖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1988년 한국으로 돌아와, '혼자랍니다' '정 때문에'로 복귀에 성공하고, 이후 '차표 한 장', '인생은 생방송',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 노래를 발표할 때마다 인기곡이 되었습니다. 1998년 발표한 '네 박자'로 KBS 가요대상 본상, 올해의 가수상을 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돌아온 송대관의 시절'이었습니다.
매니저 3명을 두고 성공적으로 활동하던 2009년 이른바 100억원대 '부동산 사기 사건'에 연루됩니다.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아내가 자살을 생각할 만큼 인생이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습니다.
2000년 이후에도 히트곡을 냈습니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로 시작하는 '유행가'는 아내 이정심씨가 작사한 노래로 송대관은 화려한 옷차림에 '엇박자 춤'을 더해 젊은 층까지 사로잡았습니다.
3.내 걱정마쇼 신곡 정말 잘나왔응께, 누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가요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송대관과 '바늘과 실'로 불렸던 태진아는 "아침 밥숟가락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슬프다"며 "송대관 선배는 내 인생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고 했습니다.
부부가 평생 인연을 맺어온 김상희씨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깔끔하고 대찬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연락해온 송대관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습니다. "누나 신곡이 너무 잘 나왔어. 내 걱정 마쇼잉."
유족으로는 아내 이정심씨와 아들 진형, 진석씨가 있습니다.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입니다.
쨍하고 해뜰날, 1976년 10대 가수 가요제 MBC761030방송
초대가수 송대관 '지갑이 형님' 전국노래자랑 KBS 250119 방송 (송대관 마지막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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